하루하루에 치이며 무너질 듯 버티던 날들 사이, 만취레터는 늘 제 나름의 비빌 언덕이 되어줬습니다. 일상의 언저리에서 스치듯 지나갔던 마음들을 이곳에 풀어내면서, 저는 스스로를 다시 다잡을 수 있었고, 또 나눌 수 있어서 외롭지 않았어요.

이 긴 시간 동안 꾸준히 읽어주시고, 때론 따뜻한 답장을 보내주시며 함께해주신 모든 구독자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려요. 덕분에 제가 ‘글을 쓰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고 살아올 수 있었습니다. 조금은 어설프고, 때론 느슨했지만, 지금까지 함께해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저는 멈추지만, 만취레터는 잠시 쉬었다가 계속되니 앞으로도 만취레터의 이야기들 많이 사랑해 주세요! 항상 건승하세요.❤️

드라마 제작사에서 일하고 있는 저는 쇼비즈니스 세계를 그린 작품을 보면 환장합니다. 이번엔, 그 '돈 잘 쓰기로 소문난' 애플TV+에서 제대로 사고를 쳤네요. 바로 할리우드를 배경으로 하는 시리즈 <더 스튜디오>입니다. 

주인공은 코미디 감각이 뛰어난 세스 로건(배우, 감독, 제작자, 그리고 코미디언). 그가 연기하는 맷은 가상의 영화사 '콘티넨탈 스튜디오'(워너브라더스 같은 메이저 스튜디오입니다)의 신임 대표로 부임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맷의 첫 미션은 하나. '쿨-에이드'라는 유치한 캐릭터 무비를 만들어 대박 흥행을 만들 것. 영화광인 맷은 이 영화를 <바비>처럼 예술성과 흥행성을 모두 갖추길 바라지만, 스튜디오는 '돈 되는 영화'를 요구합니다. 그 와중에 맷은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과 미팅을 하는데요. 마침 감독님의 이번 아이템은 '쿨-에이드'를 마시고 집단 자살한 사이비 종교 사건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맷은 덜컥 계약을 합니다. 그러나 이를 회장에게 보고하지 못하고 결국 뒤늦게 대본을 캔슬하는 사태까지...

“난 영화를 좋아해서 이 일을 시작했는데, 영화를 망치는 일을 하는 것 같아 겁나요”

<더 스튜디오>는 이처럼 영화광이자 허당 신임 대표 맷의 고군분투를 코믹하게 그려냅니다. 마치 시트콤처럼 할리우드의 제작과정이 에피소드마다 펼쳐지는데요. 러닝타임은 회당 30분으로 부담없이 즐기실 수 있습니다.

애플 TV의 돈 맛이 느껴지는 이 시리즈의 백미는 엄청난 카메오 라인업인데요. 마틴 스코세이지, 샤를로즈 테론, 그레타 리, 앤서니 매키, 올리비아 와일드, 잭 에프론 등 매회 기라성 같은 스타들이 능청스러운 연기를 보여줍니다.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이 "뿌엥" 우는 연기를 보고 싶다면, 당장 1화를 재생해보시길)

뿐만 아니라, 진짜 돈 쓴 티가 나는 부분은 음악입니다. 놀랍게도 영상 편집본을 기반으로 라이브 세션이 영상의 리듬에 맞춰 연주한 사운드가 흐르는데, 이게 정말 고퀄리티 할리우드 시리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폭소한 뒤에 남는 건, 맷의 캐릭터를 대표로 할리우드 산업의 뒷편에서 고군분투하는 여러 스태프들의 모습입니다. 소동 끝에는 영화에 대한 일방적인 사랑과 애증이 느껴지는 부분이 짠한데요. <더 스튜디오>는 가볍지만 이처럼 뼈가 있습니다. 영화와 드라마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이 시리즈를 보고 좋아하지 않을 수 없을겁니다.
(애플TV에서 시청 가능하고, TVING 프리미엄을 통해 애플 TV를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