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문희  배우가 모두의 뇌리에 박히게 된 작품, 아니 장면이 있습니다. 바로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의 '호구마' 장면! ‘호구마’라는 언급과 동시에 모두의 머릿속에 ‘호박고구마!’를 외치는 목소리가 재생되고 있으리라 생각해요. 무려 16년 전에 방영된 시트콤이 지금까지도 모두를 웃기는 밈으로 사용되고 있다니. 참 대단하지 않나요?

작년, 하이킥 가족들이 MBC의 ‘다큐플렉스’에서 십여 년 만에 다시 만났습니다. 반갑게 포옹을 하고, 근황을 묻고 옛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어요. 돌아보는 과거 영상 중, 당시 연기에 입문한 지 얼마 안 된 배우들에게 나문희 배우가 충고를 건네는 장면이 있는데요. 찰나의 장면이지만, 단순히 더 어른이라 하는 이야기가 아닌, 연기에 도움이 되는 실질적인 조언에서 업계 선배의 노련한 통찰이 드러납니다. 한평생 현업에서 몸담고 계신 것에 대한 경의와 별개로, 그런 선배와 함께 일하는 것 또한 엄청난 행운이겠다는 생각도 들더라구요.

이 방송에서 나문희 배우는  ‘호박고구마’가 그동안의 기도와 소원을 풀어준 큰 재산이라고 말합니다. 지금 봐도 ‘내가 이렇게 시치미를 뚝 떼고 했네’ 생각한다고요. 어쩌면 본인을 내려놓아야 했을 순간이, 나중에 돌이켜보면 보물 같은 순간이 되기도 하나 봐요. 좀 더 자란 후 다시 보자니, 방영 당시 하이킥을 보던 그 시절과 다른 감명을 받게 되기도, 코가 시큰해지기도 합니다. 사뭇 달라진 내 상황을 대입해 추억 여행을 한번 떠나 보세요. 마치 친하게 지냈던 중학교 동창을 성인이 되어 다시 만난 것처럼 몽글몽글한 감정도 샘솟을 거예요.

온 동네를 휘저으며 민원을 넣고 다녀 도깨비 할매라고 불리는 옥분과 원칙주의 공무원 민재의 만남, 시작부터 쉽지 않아 보여요. 어쩐 일인지 옥분은 영어 공부에도 열심인데요. 유창하게 영어를 구사하는 민재를 보며 영어를 가르쳐달라고 애원해요. 어렵게 성사된 영어 과외, 이들의 과외는 순조로울까요?

이 영화의 주요 장치는 ‘말’이에요. 옥분의 말을 그저 귀찮고 성가시게 여기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계속 평행선일 것 같던 옥분과 민재는 타국의 말을 배우며 서로 깊이 교감하고 가까워지죠. 그리고 본인이 평생 묵혀뒀던 말을 하기 위해 타국의 언어를 공부하는 옥분, 그 말이 세상 밖으로 나왔을 때 돌아오던 주변인의 말까지. 진짜 하고 싶은 말을 꺼냈을 때 이해하고 교감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살면서 꼭 해야 하는 말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더라고요. 

<아이 캔 스피크>로 나문희 배우는 여우주연상을 받고, 각종 영화제에서 상을 휩쓸었어요. 나문희 전성시대라는 말이 나오기도 했죠. 극에서 열심히 영어를 공부해 미국 법정에서 증언하는 옥분처럼, 나문희 배우가 몇십 년 쌓아온 연기에 대한 진심이 빛을 본 작품이에요. 그래서 꼭 추천하고 싶었습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스토리와 묵직한 배우가 만나 주는 울림, <아이 캔 스피크>를 통해 고스란히 느껴보세요. 

서운해서 그랬어요. 서운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