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2월의 마지막 날이 다가왔습니다. 3월이 되면 새 학기가 시작되니, 이제는 정말 2025년 시작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올 해가 두 달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저는 벌써 올해의 영화를 발견한 기분이 듭니다. 그 영화는 20년 남짓한 세월을 돌고 돌아 제게 도착한 2006년 영화의 재개봉작, <더 폴: 디렉터스 컷>입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보기 전에 아무런 정보를 찾아보지 않고 보게 되었는데요. 영화 제목인 <더 폴>과 다소 과장되게 표현된 코스튬을 입은 남성의 강렬한 인상(위의 사진)만 보고, ‘봉타기 장인의 인생을 다룬 영화인가’라고 홀로 단단한 착각을 했었습니다. 물론 전혀 다릅니다.

스턴트맨과 아이가 함께 짓는 모험담

1920년 미국 어느 병원, 부상을 비롯한 여러 시련으로 인생의 긴 터널을 겪고 있는 전문 스턴트맨 ‘로이’가 쇄골이 부러져서 입원한 꼬마소녀 ‘알렉산드리아’(심히 귀엽습니다)와 만납니다. 로이는 의사 몰래 모르핀을 얻기 위해, 알렉산드리아에게 세상의 저 편 다섯 전사의 천일야화 같은 모험담을 들려주기 시작합니다.

영화는 로이와 알렉산드리아가 만나서 일어나는 이야기와, 로이가 들려주는 액자 속 이야기로 이뤄져있는데요. 로이와 알렉산드리아가 날마다 어떤 기분과 상태로 이야기를 나누는지에 따라 다섯 전사의 모험담 또한 방향이 휙휙 변합니다. 이야기를 짓는 것은 로이지만, 이야기 속에 깊이 빠져든 청자인 알렉산드리아 또한 이야기에 개입하는데요. 영화는 그 과정을 통해 이야기가 인간을 어떻게 구원할 수 있는지, 이야기라는 것이 인류에게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 말하고 있습니다. 스포일러를 피하기 위해 자세하게 말씀드릴 수 없지만, 서로를 사랑하고 아끼는 두 인물이 서로를 구원하는 클라이막스의 전투 시퀀스는 제가 이 영화를 올해의 영화라 생각한 순간이기도 합니다. 이 장면을 통해 감독은 이야기가 단순히 작가가 독자에게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상호작용하며 사람을 결국 궁극적으로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보여줍니다.

몽상가, 영화광, 이야기꾼 타셈 싱

영화 밖의 비하인드 스토리 또한 이 영화의 메시지에 맞닿아 있습니다. 타셈 싱 감독은 정말 ‘이야기’에 미친 사람인데요.(positive) 타셈 싱 감독은 이 영화를 만들기 위해 ‘알렉산드리아’ 역할을 4년 동안 찾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의 안목은 적중했죠. 영화 속에서 알렉산드리아가 로이와 상호작용하면서 이야기를 지었듯이, 아역인 카틴카 언타루는 순수한 애드리브가 영화 줄거리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또한 감독은 장소 섭외에만 십수 년, 촬영에만 4년이 걸렸고, 18개국 26개의 로케이션을 돌아다니며 초현실적인 풍광을 완성시켰습니다. 게다가 CG를 배제한 채 모든 장면을 촬영했습니다. (스태프들은 뒤에서 감독의 험담하지 않았을까요...?) 그 모든 노력은 <더 폴>이 꿈과 현실, 영화와 이야기가 서로 뒤엉키는 섬세한 질감을 전달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감독의 개인적인 이야기마저 흥미롭습니다. 타셈 싱 감독은 당시 여자친구와 헤어지고, 광고로 번 돈을 모두 이 영화에 다 쏟아부었다는데요. 2006년도 개봉 당시에는 흥행하지 못한 특이한 영화였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지구 반대편에 위치한 한국에서 개봉한 <더 폴>은 입소문을 타고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면서 역주행 흥행을 기록합니다. 타셈 싱 감독은 내한하여 다양한 GV와 인터뷰를 통해 한국 관객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합니다. 이 과정 자체가 이야기의 마법을 증명하는 아름다운 순간이 아닐까 싶습니다. 역주행 과정까지 이 영화 메시지가 완성되는 과정인 셈이죠. 영상을 보시면 감독님이 얼마나 ‘이야기’를 좋아하는지 느껴집니다. 앞으로도 종종 생각나서 꺼내볼 영화일 것 같습니다!